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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 앞에서 멈춰 선 3분, 그 짧은 시간에 대하여

Juliana Lee 2026. 4. 30. 12:50

부스 앞에서 멈춰 선 3분, 그 짧은 시간에 대하여

 

해외 전시회장의 풍경을 떠올려 봅니다. 거대한 컨벤션 홀, 수백 개의 부스, 수천 명의 관람객. 그 사이를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는 사람들. 누군가 잠시 우리 부스 앞에 멈춰 섭니다. 명함을 건네며 가벼운 인사를 나눕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다시 인파 속으로 사라지기 전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어야 3분입니다.

이 짧은 시간이 사실은 그 전시회 전체의 성패를 가른다는 사실을, 현장에 서본 분들은 모두 아실 겁니다.

"좋은 제품이면 알아본다"는 오래된 환상

오랫동안 한국의 많은 기업들은 이런 믿음을 가져왔습니다. 제품만 좋으면 결국 시장이 알아준다는 믿음. 어느 정도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글로벌 전시회 부스 앞에서, 처음 보는 외국인 바이어 앞에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그들은 우리 회사를 모릅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그들의 시장에서 어떤 위치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고, 우리 산업의 한국 내 맥락은 더더욱 모릅니다. 그들에게 우리는 그날 만난 수십 개의 부스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 무관심 위에서, 우리는 단 3분 안에 그들의 머릿속에 의미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좋은 제품이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합니다. 그것을 짧은 시간 안에 상대방의 언어로 번역해 전달하는 능력이 있을 때, 비로소 의미가 됩니다.

익숙한 방식이 작동하지 않는 순간

많은 분들이 국내에서 이미 좋은 IR 피칭 자료를 가지고 계십니다. 투자자 앞에서 검증된, 충분히 다듬어진 스토리. 그 자료를 영문으로 번역해 해외로 들고 가는 것은 어찌 보면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그 자료가 펼쳐지는 순간, 미묘한 어긋남이 생깁니다. 투자자에게 던져야 할 질문과 파트너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투자자는 묻습니다. "이 회사가 앞으로 얼마나 클 수 있는가." 파트너는 묻습니다. "이 회사와 함께함으로써 내가 무엇을 얻는가."

같은 회사를 설명하더라도, 두 질문에 답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야 합니다. 전자가 미래에 대한 약속이라면, 후자는 현재의 거래 가치에 대한 제안입니다. 이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같은 자료로 두 자리를 모두 감당하려 하면, 결국 어느 쪽도 완전히 설득하지 못합니다.

3분이라는 시간을 다시 들여다보면

3분은 짧은 시간입니다. 동시에, 잘 설계된 3분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처음 30초는 우리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각인시키는 데 씁니다. 회사명과 업종을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어떤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풀고 있는 회사인지를 한 호흡에 전달하는 문장이 필요합니다. 상대는 이 회사 이름을 평생 처음 듣는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다음 1분 정도는 신뢰의 근거를 쌓는 시간입니다. 자랑이 아니라 증거입니다. 어떤 시장에서 어떤 검증을 받았는지, 어떤 글로벌 브랜드와 일하고 있는지, 어떤 인증과 수치가 우리를 뒷받침하는지. 추상적인 형용사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숫자와 이름이 신뢰를 만듭니다.

이어지는 1분은 가장 섬세한 구간입니다. 우리 제품이 좋다는 이야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 그 제품이 상대방의 사업 안에서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를 그려주는 시간입니다. 미국의 유통 파트너에게 들려줄 그림과 독일의 산업 파트너에게 들려줄 그림, 그리고 중동의 디스트리뷰터에게 들려줄 그림은 같을 수 없습니다. 같은 제품을 두고도 풍경은 매번 다시 그려져야 합니다.

마지막 30초는 다음 만남을 약속하는 데 씁니다. "관심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라는 말은 사실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 말입니다. 구체적인 시간, 구체적인 장소, 구체적인 다음 행동을 제안하는 한 문장이 그날의 만남을 비즈니스로 이어주는 다리가 됩니다.

현장에서 자주 마주치는 풍경들

오랫동안 클라이언트와 함께 해외 전시회 현장을 다니면서 반복해서 마주치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회사 연혁부터 시작하는 피칭. 한국식 정중함의 표현이지만, 글로벌 청중의 집중력은 그 첫 문장에서 이미 흩어져 버립니다. 누가 언제 회사를 세웠는지는, 신뢰가 쌓인 다음에야 의미가 생기는 정보입니다.

기술 스펙을 깊이 파고드는 설명. 우리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부분이지만, 첫 만남의 상대에게는 너무 무거운 짐입니다. 스펙은 다음 미팅에서 펼쳐도 늦지 않습니다. 첫 3분은 의미를, 다음 30분에서 디테일을 다루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서입니다.

외운 영어 스크립트. 정확하게 외운 문장일수록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들립니다. 상대의 표정, 부스의 분위기, 그날의 흐름에 따라 자유롭게 변주할 수 있는 핵심 메시지 몇 개가, 완벽하게 외운 5분짜리 스크립트보다 훨씬 멀리 갑니다.

영어로 쓰여 있지만 사고방식은 여전히 한국식인 자료. 한 장에 정보를 빽빽하게 채우고, 결론을 끝에 두고, 격식 있는 표현을 선호하는 한국식 문서 문법은, 핵심을 먼저 제시하는 데 익숙한 글로벌 청중에게는 낯섦을 넘어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번역이 아니라 다시 쓰는 일

저희가 클라이언트와 작업하면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글로벌 피칭은 번역이 아니라 다시 쓰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언어를 바꾸는 일과 메시지를 다시 설계하는 일은 다릅니다. 같은 회사, 같은 제품이라도 라스베이거스의 부스에서 하는 이야기와 하노버의 부스에서 하는 이야기는 달라야 합니다. 시장의 관습이 다르고, 의사결정의 구조가 다르고, 신뢰를 얻는 방식이 다릅니다. 그 차이를 무시한 채 하나의 자료를 모든 곳에 들고 가는 것은, 효율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비싼 비효율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함께 작업할 때는 자료의 디자인보다 먼저 메시지의 설계에서 시작합니다. 어떤 시장에서 어떤 청중에게 무엇을 말할 것인가. 3분, 5분, 10분이라는 서로 다른 길이의 자리에서 같은 본질을 어떻게 다른 모양으로 풀어낼 것인가. 현장에서 받게 될 질문에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 전시회가 끝난 뒤의 팔로업 커뮤니케이션은 어떤 결로 이어갈 것인가.

이 모든 것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3분이라는 시간이 의미를 갖기 시작합니다.

다음 전시회를 준비하시는 분들께

해외 전시회 한 번에 들어가는 비용을 가만히 따져 보면 결코 적지 않은 숫자가 나옵니다. 부스비, 항공권, 체류비, 부스를 지키는 사람들의 시간, 그리고 그 자리에 서기 위해 준비한 모든 것들. 그 큰 투자의 결과가, 결국은 부스 앞에서 멈춰 선 누군가와 나눈 3분의 대화로 압축된다는 사실을, 많은 분들이 전시회가 끝난 뒤에야 실감하시곤 합니다.

다음 전시회를 준비하고 계신다면, 부스 디자인이나 브로슈어보다 한 걸음 앞서 점검해 보실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3분 동안 무엇을, 어떻게, 누구에게 말할 것인가. 이 질문에 분명한 답을 가지고 현장에 도착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거리가 있습니다.

 

줄리아나리앤파트너스는 그 거리를 좁히는 일을 합니다. 사업의 본질을 다시 듣는 일에서 시작해, 그것을 글로벌 청중의 언어로 다시 쓰고, 현장에서 살아 움직이는 커뮤니케이션으로 다듬어 드리는 일. 해외 전시회 피칭, 영문 IR, 글로벌 파트너십 커뮤니케이션을 준비하고 계시다면 언제든 편하게 연락 주십시오. 첫 대화는 늘,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