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노년층 악화되는 삶의 질] (상) 강제 은퇴에 내몰린다… 불가능 가까운 재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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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2007-01-28 18:56] | ||
“1년 넘게 직장을 구하러 다니면서 면접도 세번 정도 봤지만 다 떨어졌습니다.처음에는 월 150만원 이상을 바랐지만 지금은 100만원만 줘도 일해야지 하는 마음입니다”
지난 25일 서울 경운동 서울시 중앙고령자취업알선센터에서 만난 최모(55)씨는 씁쓸한 표정으로 50대 퇴직자가 구직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서울의 명문대 대학원을 졸업했고 대기업 기획실에서 일한 경력도 갖고 있지만 재취업 전선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는 “중소기업 경영자문이나 경영관리처럼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지만 마땅한 자리가 없다”면서 “면접까지 봤다가 젊은 사람에게 밀려서 탈락했을 때는 참 서러웠다”고 말했다.
50대 이상 화이트칼라 퇴직자가 원하는 직장을 갖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장노년층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는 경비나 청소,주차관리 등 저임금 단순직이 대부분이다. 윤형준 센터 사회복지사는 “고령자가 과거의 경력이나 경험을 살려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면서 “편한 일자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취업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재취업에 도전하는 것도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한 경우에나 가능하다. 건강이 나빠져서 일을 포기하고 은퇴로 내몰리는 장노년들도 많다. 서울 양재동 서초종합사회복지관에서 만난 한모(70) 할머니는 빠듯한 살림살이 때문에 일을 계속해야 하는 형편이었지만 건강 때문에 포기했다. 한 할머니는 “4년 전까지 장사일을 했는데 눈과 귀가 어두워지고 기력도 없어져서 그만뒀다”면서 “자금은 정부에서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주는 월 30만원과 복지관에서 도움받는 쌀과 밑반찬으로 근근이 살고 있다”고 말했다.
고령화연구 패널조사에서도 장노년들은 건강악화와 구직난 등 때문에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은퇴로 내몰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45세 이상 임금근로자의 49.4%,자영업자의 59.7%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은퇴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미 은퇴한 이들을 대상으로 은퇴 사유를 2개씩 꼽아달라고 한 결과 건강악화(45.1%),재취업실패(45.0%),정년퇴직(38.2%) 등의 비자발적 이유가 훨씬 많았다. 원치 않은 은퇴가 많은 만큼 은퇴 이후 만족도도 매우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은퇴자 중 43.6%는 은퇴한 것에 불만을 표했고 54.6%는 은퇴 전보다 후가 더 나쁘다고 답했다.
이는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 조사결과와 큰 차이가 난다. 유럽 10개국 대상 조사에서는 은퇴 이유로 연금자격 취득(61.5%)을 꼽은 사람이 가장 많았고 ‘삶을 즐기기 위해’ ‘수입이 충분해서’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등 다른 긍정적인 이유를 꼽은 비율도 18.3%였다.
미국의 경우 은퇴에 만족한다는 답변은 90.6%이고,건강이 허락하는 한 은퇴하지 않겠다는 답변은 임금근로자는 5.1%, 자영업자는 9.9%에 그쳤다. 우리와는 은퇴에 대한 개념 자체가 다른 셈이다. 노동연구원 신현구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는 교육비 등 자녀부양비 지출이 많아 노후 준비가 부족한 데다 장노년층 국민연금 수혜 비율도 높지 않기 때문에 가급적 은퇴를 늦추려고 한다”면서 “하지만 장노년들이 적합한 일자리를 찾는 것은 매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는 패널조사 결과 60세 이상의 일자리에 대한 분석에서도 확인된다. 현재 일하고 있는 60세 이상 임금근로자 가운데 46.0%,자영업자 중 46.4%는 일자리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답변했다. 60세 이상 임금근로자 경우 관리자급에서 일하는 비중은 11.8%에 불과했고,업무수행에 육체적 힘이 많이 필요하다는 답변은 60.6%였다. 57.6%는 현재 일자리가 불안정하다고 답했고 59.0%는 임금에 불만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현재 일자리에서 그대로 계속 일하고 싶다는 답변은 89.1%였다.
자영업자 조사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60세 이상 자영업자 중 88.1%는 종업원을 정식 고용하지 않고 있다고 답해 매우 영세한 규모인 것으로 추정됐다. 업무수행에 육체적 힘이 많이 필요하다고 답변한 비율은 73.5%였으며 현재 수입에 대해서는 66.2%가 불만족스러워했다. 현재 일이 불안정하다는 답변은 39.9%로 임금근로자보다는 낮았지만 적지 않은 비율이었다.
서초노인종합복지관 취업알선센터 김찬기 상담사는 “센터에 구인을 의뢰하는 일자리는 경비 파출 미화 같은 게 90% 이상인데,그나마도 65세 이하를 소개해달라는 등 나이 제한을 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장노년층의 일자리 불안은 노년세대 삶의 질 악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탐사기획팀=김명호 팀장, 송세영 권기석 유병석 기자, 임항 전문기자 tamsa@kmib.co.kr |